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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소식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과거와 권한, 업적

by 손경제닷 2022. 9. 9.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와 관련하여 과거 및 권한, 업적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여왕님의 즉위부터 살펴보자면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26세의 나이로 여왕이 되었다. 2022년 현재 96세로 재위 70주년을 맞기도 했다. 전 세계 지도자 중 가장 최고령이자 가장 오랫동안 재위해 있는 인물이었으며, 영국 역사상에서도 최장수 군주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권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군주는 명목상 국가 원수이며 군 통수권자,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타국에 대한 전쟁 선포권과 국교회의 성직자 임명권, 의회 소집과 해산권, 법 제정을 최종적으로 허가할 수 있는 동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업적

1992년 윈저성 화재 발생 시 재건 비용을 영국 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하려 한 것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심화되자 엘리자베스는 왕실의 세금 납부를 선언했다. 이는 최조의 왕실 세금 납부의 시작점이었으며
또한 버킹엄 궁전을 일정 기간 지정하여 개방하였고 입장료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왕실 유지 비용에 막대한 비용이 지속되게 사용되어 혈세 낭비라는 비난을 일부 받았으나, 사실은 왕실 보유 자산의 파생으로 발생하는 수입과 관광, 미디어산업, 각종 로열티 등으로
실제로는 매년 3조 원가량의 수입으로 영국 경제에 일부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여왕이 되기 전 공주 시절이었던 1939년에는 2차 세계대전에 19세의 나이로 여군에 자원입대했다. 이는 현직 모든 국가 원수 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되는 계기였다.
무엇보다 70년에 걸쳐 긴 시간 동안 해외 각국을 순방하며 영연방의 지위를 유지했다.
2011년에는 영국과 갈등이 깊은 아일랜드를 방문해 독립 전쟁에 안타깝게 희생당한 이들에게 여왕임에도 정중히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아일랜드 국민의 무려 77%에 해당하는 인구가 그녀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녀

3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 장남 웨일스 공 찰스
  •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
  • 차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 삼남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 왕자

엘리자베스 여왕 출생 및 과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
  • 출생: 1926년 4월 21일
  • 런던 버클리 스퀘어에서 조지 5세의 둘째 아들이자 요크 공작이었던 알버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 리온의 장녀

엘리자베스와 1930년 태어난 그의 여동생 마거릿 로즈는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재택교육을 받으며 사랑이 가득 찬 가족 환경에서 자랐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조지 5세와 매우 가까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릴 때부터 놀라운 수준으로 책임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윈스탄 처칠은 총리가 되기 전 시절 엘리자베스가 "어린 나이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품격 있는 분위기"를 지녔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품격이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학교에 다니진 않았지만 언어 능력에 능숙하고 특히 헌정사에 대해 깊이 공부했다. 그가 동갑내기들과 보다 수월하게 교제하고 사교할 수 있도록 제1 버킹엄궁이라는 특별 걸가이드 단체가 설립되기도 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하였으며 이를 뒤로하여 당시 데이비드로 불리던 그의 장남이 에드워드 8세가 됐다. 하지만 그가 그 시절 2번 이혼하였고 국적이 미국인이었던 윌리스 심슨을 부인으로 선택하자 그의 결정은 정치 및 종교적 이유로 존중과 인정을 못했다. 결국 그는 그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요크 공작이 마지못해 조지 6세가 됐다. 그의 즉위식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맛보기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후 공석에서 아버지의 즉위식이 "아주 아주 멋졌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의 긴장이 증가하고 있는 시기에 갑작스레 새로 즉위한 왕과,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는 먼저 왕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데 주력했다. 장녀 엘리자베스 2세는 그들의 본보기를 놓치지 않았다. 1939년 13세였던 엘리자베스 2세 공주는 왕과 왕비와 함께 다트머스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공주와 그의 여동생 마가렛은 이곳에서 사관후보생의 호위를 받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의 팔촌, 그리스의 필립 왕자였다. 엘리자베스 2세 공주가 필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처음 시점이라 한다. 필립 왕자는 해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면 왕실 친척들을 찾았다. 1944년 엘리자베스 2세가 18세가 되던 해, 공주는 필립 왕자의 사진을 방에 두었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분명히 사랑에 빠져있었다. 전쟁 후반기에는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자 국방군에 자원입대해 대형 트럭 운전과 정비를 배웠다고 한다. 유럽 전승일에 엘리자베스는 버킹엄궁에서 왕가에 합류에 '더 몰(버킹엄궁 앞으로 있는 큰길)'에 모인 수천 명의 국민들과 함께 유럽 내 전쟁의 종료를 함께 기념했다. 그는 향후 시간이 지나 "우리는 부모님들께 밖에 나가 직접 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라고 하며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회상했다고 한다. "누가 알아볼까 무서웠던 것이 기억난다. 화이트홀(영국 런던에 있는 관청이 늘어선 거리)에 낯선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과 우리가 모두 행복과 안도의 물결에 휩쓸렸던 것을 기억한다." 전쟁이 끝난 뒤 엘리자베스 2세는 필립 오아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그의 갈망은 여러 장애물에 맞닥뜨렸다. 국왕은 사랑하는 딸을 잃는 것을 주저했고, 필립은 당시 그의 외국계 혈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기득권층의 편견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엘리자베스와 필립의 소망은 이뤄졌으며 둘은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과거와 권한, 업적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다음 시간에는은 새로 즉위한 찰스 3세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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